화양연화 : 스쳐 지나갔기에 아름다웠던 사랑

2021. 8. 15. 02:31소개/영화

반응형
INTRO


이날도 어김없이 왓챠에서 무엇을 볼지 이것저것 둘러보던 와중에 언젠간 볼것이라 벼르고 있었던 <화양연화 : 리마스터링>이 눈에 띄었다. 홍콩영화에 대한 지식은 성룡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가 아닌 이상 거의 전무하던 나이기에 선뜻 손이 안가던 영화였는데 이날따라 이상하게 끌리더라. 그래서 바로 재생해버렸다. 2000년 개봉된 영화임에도 이렇게 촌스럽지 않을 수가 있다니. 무엇보다 OST들이 하나같이 주옥같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배우 '양조위'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투명한 눈망울 너머로 보이는 고독과 슬픔이 보이는게 참 신기했다.

 

 

 

화양연화 (2000)

감독 : 왕가위
출연 : 양조위, 장만옥
러닝타임 : 97분 

 

 

 

두 배우 모두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홍콩배우인데 특히 양조위는 위상이 엄청나다. 이름만 들었던 홍콩영화에 다수 출연한 이분은 <천녀유혼> <중경상림> <씨클로>(ost가 무려 'creep') <색계>등이 있다. 이 외에도 다작을 하신 이분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준수한 외모를 유지하고 계신데 이번에 새로 개봉할 마블 영화에서도 활약하실 예정이다.

 

같이 나온 또다른 히로인 장만옥 배우는 보는 내내 여자도 홀릴만한 아우라를 내뿜는데 과하지 않은 절제된 섹시미가 풍기는 묘한 배우였다. 이분도 꽤나 굵직한 영화에 참여하셨는데 여전히 보지 못한 <아비정전> <폴리스 스토리> 등에 출연. <아비정전>에서는 무려 장국영 배우와 합을 맞추었으니 얼마나 하이급 스타였는지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2010년 이후엔 활동을 안하시는지 필모는 중단 된 상태다. 둘의 얼굴 합이 안맞을 것 같으면서도 잘 맞는게 보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우연히 한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된 수리쩐(장만옥)과 차우(양조위)는 각자 가정을 갖고 있는 남녀였다.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된 둘은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며 부딫힐 수 밖에 없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야근을 하거나 출장을 가기 일쑤인 수리쩐의 남편과 차우의 아내. 그러다보니 늘 허전함을 느끼던 둘은 자신들도 모르게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상대가 없으니 끼니를 대충 떼우게 되는 수리쩐과 차우는 동네의 국수집에서 자주 마주치는데 이때의 장면과 배경음악이 정말 멋지다. 누구보다 쓸쓸한 모습으로 걸어 들어오는 수리쩐과, 잠시후에 같은 모습으로 들어오는 차우의 모습. 둘의 모습에 공통점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수리쩐은 차우의 넥타이가 자신의 남편의 넥타이가 똑같은 것을 알게된다. 마찬가지로 차우또한 수리쩐의 가방이 아내의 것과 같은 것을 알게 되는데. 이렇게 둘은 서로의 남편과 아내가 불륜관계라는 것을 눈치챈다. 

 

 

믿을 수 없는 대화 후 돌아오는 장면속에서 둘의 착잡한 마음이 느껴진다. 불륜을 저지르는 그들의 시작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위로하기 위해 이어져가는 만남. 서로의 배우자가 어떤 행동과 말투를 썼을지 추측하며 두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시작된다.

 

 

우린 그들과는 다르니까요

 

서로에게 싹트는 관심을 애써 무시하며 시간을 보내는 두사람. 당연히 함께하던 남편과 아내는 함께 외국으로 나가버리고, 아파트에 남겨진 차우와 수리쩐은 함께 식사하고, 함께 차를 마시며 각자의 배우자는 무엇을 하고있을 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수리쩐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점점 차우에게 기대어가는 자신의 변해가는 모습을 느끼며 애써 멀리하려 하지만 그럴때마다 한걸음씩 더 다가오는 차우. 그런 그의 모습을 밀어내던 수리쩐도 서서히 그에게 적응해간다.

 

 

만남을 지속하면서도 남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이. 아직까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더이상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자신의 마음에 정리를 하는 수리쩐은 차우에게 이별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둘은 헤어지는가 싶었지만 연락이 끊겼던 차우의 전화 한통에 다시 달려가게 되는 수리쩐. 

 

힘들어하는 수리쩐을 보며 차우는 둘이서 함께 외국으로 떠나자고 제의하지만 남편을 기다릴수밖에 없는 그녀는 아파트에 남은 채로 차우를 홀로 떠나보낸다. 그렇게 둘의 사이는 끝이 난다. 차우를 홀로 떠나보낼 때 아파트에서 눈물을 흘리는 수리쩐은 차마 입밖으로라도 슬픈 마음을 내비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가슴아프게 비쳐보낸다.

 

 

그렇게 차우는 홀로 싱가포르로 떠났지만 수리쩐은 그 몰래 차우가 지내는 집에도 찾아오고, 몰래 전화를 걸어 차우의 목소리를 듣는 등 짠내 나는 사랑을 표현하지만, 결국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는 사랑이기에 이렇게 그들은 서로를 갈망하며 끝을 낸다. 

 

수리쩐에게 아이가 생기고 다시 찾은 아파트. 창밖을 바라보며 예전 일을 회상하는 수리쩐은 그때의 기억만으로도 붉혀지는 눈시울에 아직까지도 차우를 잊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나간것은 먼지 쌓인 유리창처럼 볼 수는 있지만 만질수는 없기에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고히 간직하던 차우는 캄보디아에서 손가락만한 구멍을 뚫어 그곳에 자신의 숨겨두었던 마음을 토로한다. 아무런 대사도 없고, 배경도 허전한 이 장면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수년간 그누구에게도 털어 넣을 수 없었던 힘든 나날을 이 장면만으로 이야기 해 주는 듯 했다.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불륜이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소재는 너무나도 별로이지만 두 배우의 표정과 눈빛연기, 그리고 카메라가 그 모든것을 정당화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배우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감정표현을 눈빛으로 소화시킨다. 게다가 영화 자체의 색감까지 모든게 완벽한 이 영화. 2000년에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촌스럽지가 않다. 그보다 더욱 완벽한 OST, OST, OST!!!!!!!!!!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만큼 OST를 너무나도 잘 쓴 영화라고 생각한다. 괜히 왕가위 영화 중 최고라고 일컫어지는지 알 수 있었던 영화. 러닝타임이 약 한시간 반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많은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꽉차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본 시간이 너무 알차다. 누구나에게 추천해 줄 수는 없는 영화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취향의 영화쟁이가 있다면 이 영화는 무조건 추천이다. <화양연화>의 뜻이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일생에 있어서 서로가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728x90
반응형